티스토리 뷰

반응형

명량이 개봉하고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탄탄한 줄거리 라인, 그리고 주인공들이 실화를 배경으로 한 연기, 마지막으로 영화감독의 숨은 의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주인공과 전투함 사진
명량

 

줄거리

이순신 장군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이 전사하고 누명으로 파면되었던 이순신 장군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다. 임금은 그에게 패할 것이 뻔하니 바다를 버리고 육군에 합류할 것을 명하지만 이순신은 이를 거절하고 비록 남은 것은 12척의 배뿐이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한 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이미 독버섯처럼 번져버린 두려움을 이용하고자 고뇌를 거듭한다. 임금뿐 아니라 수하에 있는 장군들 마저도 강하게 말리는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전선 및 병력의 부족으로 수군 본부를 우수영으로 옮긴 조선수군은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한다. 왜군 133척의 배로 공격해 오는 가운데 조선수군은 불과 12척의 배로 울돌목의 좁은 수로에서 일자진을 치고 적에 맞선다. 출격 전 이순신 장군은 대장선의 진격에도 다른 배들이 움직이질 않고 대장선 홀로 왜군의 적진에 들어간다. 왜군은 대장선을 격파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대장선의 부활로 조선수군의 사기가 오른다. 이때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서로의 진영이 뒤엉키기 시작하자 왜군은 당황하여 진영이 무너진다. 이순신은 적이 혼란한 때를 이용하여 총공격을 감행한다. 이에 당황한 왜군은 대패하여 퇴각한다. 왜군은 이 싸움으로 적장을 잃게 되고 조선수군은 큰 승리를 거두어 다시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실화 배경

명량해전 또는 명량대첩이라고도 하는 해전은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이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난다. 이때 이순신은 누명을 쓰고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어 백의종군중이였고 원균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원균이 수군을 이끌었으나 대패하고 원균 또한 전사한다. 이에 이순신장군은 그 해 7월 22일 유성룡 등의 간곡한 건의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다. 이순신이 임명된 뒤 군사들의 전열을 재정비한다. 그러나 당시 군중에 쓸만한 전선은 12척에 불과하였고 그간의 물자도 바닥이었다. 그리고 패한 직후라 적들에 대한 아군의 두려움이 만연하였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을 우수영으로 옮겼다. 왜군이 명량으로 진입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은 출전명령을 내린다. 대장선이 최선두에 서서 명량으로 향하고 일본 수군 133척과 조선 수군 12척이 맞서게 된다. 이에 조선 수군은 일자진을 펼쳐 왜군을 저지하고 때마침 조류의 변화로 인해 왜군의 진영에 혼란이 온다. 이순신 장군은 투항왜인 준사가 일본 수군 장수 구루시마를 가리킨다. 그러자 이순신 장군은 김석손을 시켜 구루시마를 끌어올리게 한 후 그를 처단한다. 그리고 일본 수군의 장군이 전사하였음을 알리자 왜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조선수군의 승리를 가져온다.

영화감독 의도

명량의 감독 김한민은 인터뷰에서 말한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들어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순신이 칼의 노래로 인해 굉장히 고뇌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자신이 본 난중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아주 담백한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바른 안목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원칙과 신뢰를 지키는 사람이죠. 대의를 위해서 무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해야 할 것을 하고 그러다 때가 되면 가는 거다라고 생각하니 담백한 거죠. 원칙과 신뢰를 지킨 담백한 인간 선조는 뭐라고 할까. 전쟁이나 현장 그리고 바다를 모르는 리더라 생각해요. 이순신의 입장에서 선조는 리더의 리더인데 말이죠. 이순신 장군은 고달프고 아기 같은 왕을 만난 것 같아요. 무인과 정치의 수장과는 역학관계가 있어요. 결국은 무인의 힘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항상 있죠. 그런 지점에서 이순신 장군은 변덕이 심한 왕을 모셨지만 그래도 자기가 모셔야 하는 주군 또는 임금으로서의 신하관은 뚜렷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름 없는 격군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것을 알까? 모르면 안 되지.라고 대화하는 장면. 그게 이 영화를 만든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 대사가 나왔을 때 관객들이 아~그래 우리 선조들이 정말 고생했어 라는 생각이 들어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관객들이 음력 1597년 09월 16일 저 해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반응형